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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ladesh

<img src="http://blogimgs.naver.com/nblog/ico_scrap01.gif" class="i_scrap" width="50" height="15" alt="본문스크랩" />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의 병원,보건,위생

 

외국인들은 대부분 비상의약품을 미리 준비하고 있으며, 주로 감기약, 해열제, 두통약, 배탈약, 우황청심원, 반창고, 물파스등을 구비하고 있다.
의료시설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비상약품을 항상 준비하도록 하고, 진료를 받아야 할 경우에는 한인들 중에서 코이카(평화봉사단)나 선교사로 파송된 의사에게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병 원/ 약 국
의료보험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진료에 어려움이 많고, 진료비도 비싸다. 간단한 치료는 개인병원(의원급)에서 할 수 있으나 수술등 긴급을 요하는 경우 응급치료후 방콕이나 싱가폴 등지로 후송하는 것이 좋다.
대학병원 및 군병원 등이 있으나 지면이 좋지않으면 입원수속이 어렵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가장 시설이 좋다는 군병원은 특별허가각 없으면 일반인의 입원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처럼 지방에는 보건소가 있어 *현지인*은 무료진료가 가능하다.

개인이 운영하는 의료보험회사가 있다고 하나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지는 않다.

약국에서도 간단한 두통약, 감기약 이외에는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약을 팔지 않으며 처방전의 수수료는 약 $5 수준이다. 따라서 외국인들은 교민 단위로 의료시설을 설치하여 이용하고 있으나, 한국인의 경우 비상 상비약등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야간 당직병원을 지정하여 응급환자를 치료하고 있으며, 약국의 통상 영업시간은 08 :00 ~ 22 :00 이다.

 방글라데시의 의식주 생활

2) 한국인의 기호식품 조달 여건

야채는 일반 현지인 시장에서 값싸게 구입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외국인이 이용하는 '굴산 엑넘버 마켓'에서는 수입물품들은 물론,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야채도 갖가지 구비하고 있다.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산나물, 당면, 김, 라면 등의 식품류도 한국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다.


3) 레져 여건

국토의 대부분이 평지인 방글라데시에서 외국인이 찾을 만한 곳이 없는 것이 큰 흠으로 대부분의 외국인이 가정에서 여가시간을 보낸다.

외국인이 찾을 만한 영화관, 스포츠센터, 음악회, 전시회, 박물관 등이 거의 없고 넓은 공원이 시내 여러 곳에 있으나 현지인이 몰려들어 구걸을 하기 때문에 쉴만한 곳이 못되는 형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비취가 있는 치타공지역의 콕스바잘 해안이 비교적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동북쪽 실렛 지역에 있는 방글라데쉬의 특산품인 차밭이 넓고 잘 정돈어 있는 모습들이 이국적이다.


4) 치안 상태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거주지역의 치안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외국인에 임대되는 집들은 창문마다 철제 방범망이 설치되어 있으며, 야간 절도에 대비하기 위해 경비원을 고용하거나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고 경비를 세우고 있기도 하다.

일부 가정에서는 도난을 당한 경우도 있으나 그리 잦은 편은 아니다.

빈민층 불량조직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서 가급적 야간 산책은 삼가하는 것이 좋고, 교통질서가 잡히지 않는 시내나 시외지역을 불문하고, 자가용차량의 직접 운행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삼륜 자전거들의 무질서가 심하고 현지인이 운전하는 차량들의 과속과 중앙선 침범이 다반사이므로 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5) 현지인들의 한국인 인식

외국인에 대체로 호의적인 방글라데시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현지의 상류층 사람들은 하층사람들을 무척 가혹하게 대하지만, 인정이 많고, 좀 잘못이 있더라도 쉽게 용서하는 한국인들의 가정이나 업체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의 경우 다른 곳에 취직하려 하지 않고 다시 한국인 사회에서 일하려 하는 경향도 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공간

서구인들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할 지라도 될 수 있으면 서로 몸이 부딪히는것을 피하려고 한다. 티켓을 사거나 계산을 치루려할때도 정렬된 줄로 대기하여 서있기를 좋아한다.

방글라데시 인들은 무리르 짓는 경향이 있다. 점잖은 사람은 이성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모든 노력을 한다.
기차나 버스에서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아이나 아줌마가 그네 이웃이 앉아 있는 위에 겹쳐 앉아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것을 위해 줄을 선다는 개념은 희박하다. 표를 파는 창구나 등록대를 향해 우르르 몰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a. 어떤 공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때

한국에서는 사무실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기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전체 공간을 균등하게 나누며 공간조정을 한다.


이런 조정은 가장 좋은 위치나 전망에서 자리를 옮기게 만들기도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왔을 경우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위한 자치배치를 해주려하지 않는다. 부득이 옮기게 된다면 매우 화가난 상태로 마지못해서 하며,  자기가 포기하며 내주어야하는 영역을 가능한 한 작게하려고 한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과는 이야기 조차 하지 않다가 얼음이 녹는 것처럼 서서히 친분관계를 쌓아가며 급기야는 아주 가까워진다.

b. 대화거리

우리들은 보통 대화를 40 - 50 cm 떨어진 거리에서 한다. 이야기 주제가 개인적일 경우에는 15 - 20 cm 정도 거리를 두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전자의 거리를 유지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전에 방글라데시인들은 이성과 대화를 나눌경우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이야기를 한다.특히 점잖은 남자는 여자 가까이에 서는 법이 없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연장자나 존경하는 분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었다. 요즘에는 예전보다 이런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시간

:::: 시간에 대한 개념 ::::

대부분의 방글라데시인들은  시간에 대해서 대략적인 개념만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고정된 계획표가 없고, 편리할때 식사를 합니다. 올바른 시간도 잘못된 시간도 없다는 것은 그들의 시간관념을 잘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잘못된 시간에 왔기 때문에 사람들 그냥 되돌려보내지는 않습니다. 공식적인 회합에 늦게 오는 것은 용인됩니다. "친척들이 와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라고 말하면 모두들 이해합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오면 그 사람은 책임감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습니다.

공식적인 경우, 그 약속이 중요하면 사람들은 제 시간에 맞추어서 나타납니다. 대게, 근로자들은 정시에 일을 시작하며, 학생들도 정시에 학교에 도착합니다. 학교에서는 지각에 대한 벌금이 주어집니다. 근로자가 계속적으로 지각을 하게 될 경우엔 해고되지는 않더라도 감봉처분을 받게 됩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의 시간에 대한 개념은 다음의 것들과 관련있습니다.

1. 급하다는 느낌이 없다. 때로는 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제시간에 오기도 한다. 상대방이 앞으로 자기의 일에 큰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상대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그와 관계된 일을 급하고 중요하게 취급한다.

2. 한꺼번에 여러가지 일에 손을 대서 어떤 가지적인 결과를 얻지 못한다.

3. 종교활동으로 생각과 명상에 보내는 시간을 가치있게 여긴다.

4. 다양성과 변화가 별 쓸모없으며 심지어 바람직하지 않다고까지 생각한다.

매일 먹는 음식도 변화없이 단순하며, 여성의 옷과 머리스타일에도 변화가 거의 없다. 물론 교육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변화와 다양성이 요구되기도한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시간절약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시간절약을 위해 소위원회를 결성하는 등의 일을 하기 보다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일이 되어가는 추이를 보고 싶어합니다. 필요하다면 기다림의 끝을 모르더라도 기다릴줄 아는 것이 방글라데시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람처럼 뛰고 뛰며 일어하는 방식은 방글라데시인들을 도망치게 할 따름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전에 그들을 하루 이틀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저 앉아서 시간을 보냅니다. 생각하거나 기도하거나 명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들은 접어두고 오로지 그 문제에만 집중하여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외국인이 급하고 중요하다고 해서 서두르는 것은 받글라데시 인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밀어 붙이는 것은 현명치 못한 모습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음식대접

:::: 음 식 대 접 ::::

손님이 오면 항상 무엇인가를 대접하는 것이 방글라데시의 관습입니다. 이전에는 "빤 (인도산 후추 잎이나 그 잎으로 사서 씹는 것)을 대접했으나 요즘은 차와 비스킷, 그 밖의 먹을 것들을 테이블 위에 놓아 대접합니다.
때로는 과일이나 음료수를 내놓기도 하는데, 물한컵도 함께 대접해야합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보통 차를 마시기 전에 비스켓이나 스낵과 함께 물을 마십니다.
방글라데시인을 집에 초대대할 경우 주의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소한의 음식은 밥. 달, 브하지 (신선한 채소와 물고기 요리). 고기 한접시. 카레 꼬르마 등이다. 중상류층 혹은 상류층 가정에 가보면 아마 채소 브하지, 카레계란, 생선브하지 또는 생선카레, 닭 카레 또는 코르마, 염소 또는 다른 고기 카레 꼬르마, 짜뜨니 (달콤하고 신맛도 나면서 맵기도 한 매운 양념) 같은 음식들을 대접받을 겁니다. 만일 비랴니 고기를 대접받게 된다면 비랴니와 브하지 (계란, 감자 등 ), 고기카레가 들어가고 (나머기 고기가 마르지 않기 때문에) 항상 고기 국물이 함께 나오며, 샐러드와 사탕종류 등이 나오게 됩니다.

방글라데시 인들은 이 음식들을 한데 섞어서 먹기 보다는, 한접시 한접시 따로 따로 먹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들은 한접시씩 코스로 나오게 됩니다.

회교도가 아닌 경우 다름과 같은 순서로 요리가 나오게 됩니다.


- 밥, 달, 바지 여기에 카레 계란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 밥, 생선, 생선바지가 나올 경우 "달"이 추가됩니다. 생선카레가 나올 경우에는 "달"이 추가되지 않습니다.
-밥, 고기, 여러 접시의 고기요리를 대접할때는 한 접씨씩 대접합니다. 예를 들면 닭, 생선 다음에 양고기 카레 혹은 코르마 등등, 고기 코스에 짜뜨니나 기타 다른 시큼한 양념을 함께 냅니다.
-단것, 설탕을 친 "달"등. 과일이 제공되겠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회교도의 경우 대접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밥과 고기
-밥, 달, 바지
-단 것


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흰두교도들과 불교도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어떤 흰두교도들과 불교도들은 그 어떤 고기도 전혀 먹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불교도는 계란조차도 먹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닭고기나 양고기를 대접해야하는지 , 어떤 경우에 아예 고기종류를 내놓지 않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그들의 배경에 따라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대접(환대)

:::: 대 접 ::::

비용에 상관없이 잔치를 베풀거나 축제를 즐기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접대는 방글라데시의 사회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방글라데시 인들에게 대접이란, 예기치 않은 손님에게 즉석에서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며, 대접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이라도 치루곤 합니다. 집에 온 손님들이 음식이나 기타 비용을 낼 것을 기대하면서 대접하는 것도 아닙니다. 친척이 찾아와서 몇달씩 혹은 몇년씩 (집을 떠나 대학에서 공부할 경우) 미물기도 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비용을 내지 않고 식구중의 한 사람처럼 생활하게 됩니다.

방글라데시의 전통관습에 따르면, 아는 사람이 집에 찾아왔을 때, 절대로 "무엇을 원하느냐" 고 물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전에 몰랐던 사람이라면 "왜 왔느냐"고 물을 수는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문객이 누구이건간에 일단은 그를 맞이해서 앉혀야합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그 이유를 방문객에게 설명한 후 다음 기회를 약속할 수도 있습니다.

또 손님이 찾아왔을 경우 그가 언제 떠날지를 물어보지 않습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그런 행위를 아주 무례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즉, 손님이 오면 즉시 자리를 마련해서 앉도록 청하고, 그가 떠나려고 한다면 조금 더 머무를 것을 요청해야하고, 또 다시 찾아와달라며 초대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성공

:::: 성 공 ::::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기회나 운명 혹은 사람을 조정하는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의해서 성공이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성공은 그것을 얻기위해서 애쓴 노력보다, 오로지 그 결과만를 놓고 평가받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좋지 못한 결과에 서있게 되었다면 방글라데시인들은 그가 실패했다고 생각하게됩니다. 이런 이유로 정직하지 못한 행위들과 어떻게해서든 필요한 결과를 얻기위해 뇌물이 오가는 행위가 가득합니다.

인생관 - 방글라데시인들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운명론에 의해 살아갑니다. 새로운 시도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도중에 어려움이 있으면 그들은 쉽게 개혁을 포기해버립니다. 보통의 경우 그들은 "우리조상들에게 기존의 방법이 좋았다면 나에게도 그 방법은 좋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효율성 - 방글라데시에서는 성공이 개인적인 친분관계 (무엇을 이루어 냈느냐 보다는 누구를 알고 있느냐)와 관련이 깊기 때문에 효율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대부분의 방글라데시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지위

지 위

방글라데시 인들은 자존감을 근거를 부와 배경, 가족, 방언, 교육등과 같은 것에 둡니다. 그중에서 경제적인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교육에 대해서는 낮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위의 차별을 인정하는 것은 호칭과 말에서 경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신분과 계급상의 차이를 인정합니다.

그들은 지위가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대우받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등을 내세우는 것과 지위에 따른 차별을 두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민주적인 원칙과 만인평등의 원칙이 지켜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면, 이런식의 차별의식은 사라지게 될 것 입니다.

방글라데시의 기독교인들도 교회생활이나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결혼이나 교육, 주택 등과 같은 다른 분야들에 대해서는 동등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상류계급과 중류, 하류계급간의 결혼은 불가능한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지위의 상징 ::::

자녀를 위해서 비싼 개인교사를 두는 것, 값비싼 자동차와 텔레비젼, 대형 주택을 소유하는 것. 공공장소에서 비싼 옷을 입는 것, 친구에게 비싼 음식이나 오락을 제공하는 것, 특별한 경우에 잔치를 벌이는것 등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특히 자신의 지위에 맞추어 사회적으로 꼭 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은 빚을 얻어서라도 자존심을 유지하고 집단에 의해서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사치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로, 방글라데시에서 빚을 지며 생활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채무자는 사치를 위해 이자를 지불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닌것으로 여기기도하며, 이자를 지불하는 것이 평생토록 함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본인의 빚을 아들이 대신해서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꺼이 빚을 지면서까지도 행사를 치루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딸의 결혼
아이의 탄생
중요한 시험의 합격
새 집으로의 이사
아이가 처름 밥을 먹을때


따라서, 이러한 축하잔치에 초대받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자리에 초대되었는지를 깨달아야합니다. 비록 상대방이 아무리 가난하다 할 지라도, 초대를 받게 된다면 기꺼이 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본인의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무시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부드럽게 권면해서 값싼 음식만 간단히 차리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지위격하 방글라데시 인들은 굶어죽어도 자신의 지위보다 낮은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고용이라는 단어와 사업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거 길가에서 간단한 물건을 놓고 판다 할 지라도 그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밖에 나가서 남을 위해 봉사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저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머물러 있기를 더 좋아합니다. 혼자 제 나름대로 주인노릇 하는 것이 더 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산 물건을 집으로 옮기는 행위
집을 청소하는 것
청소부의 일을 하는 것
막노동을 하는 것
머리로 무엇을 이어 나르는 것
돼지를 키우는 것
물고기를 판매하는 것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위의 행위들이 사람의 지위를 깍아내리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류층의 은퇴한 남자는 자기 집에서 본인 소유의 소를 키우면서 지냅니다. 중상류층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낮추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또는 생활 수준에 따라서 그들의 지위는 결정됩니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게 되고 손해를 입게된다고 생각합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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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심 ::::

방글라데시인들에게 있어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심, 개인의 존엄성,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욕구등이 포함됩니다.
자존심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공식적이 장소에서 사회적인 예의범절을 잘 준수하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방글라데시인들은 사회적 의무를 잘 준수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즉시 상대를 공격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모욕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방글라데시인들의 행동을 규제하게되는 가장 큰 부분입니다. 아래와 같은 상황속에서 방글라데시인들은 모멸감을 느끼게 됩니다.

ㆍ그의 부모에 대한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
ㆍ연장자에 대한 말대답
ㆍ말하고 있는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것
ㆍ화가 난 상대방에게 손을 대는 것
ㆍ강제적으로 상대방을 밀어뜨려서 물리치는 행동
ㆍ무례하고 거칠게 말하는 것
ㆍ상대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ㆍ공공 장소에서 상대를 꾸짖는 행위


비난

어떤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그의 전 인격과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식의 비난은 그 사람과 그 가족들 모두에게 까지 파급되는 영향을 미치게됩니다. 따라서 비판이나 꾸짖는 행동은 간접적으로 우회적으로 제기되어야합니다. 비판을 가하게 되더라도 "죄송합니다만" "마음 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만" 등의 말로 시작해서 상대방이 비판에 대한 내용은 어느정도 순화시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불행히도 이런식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은, 영적인 분야에 까지 그 영향이 파급되어, 믿음이 좋은 사람도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자신의 삶 가운데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들로부터 받게 될 비난을 두려워하게 되어 힘들어하게되는 이유가 되곤합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집단에 대한 소속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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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

방글라데시인들은 개인보다는 집단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개인과 집단은 동일시 되기도 합니다. 개인이 잘하면 그 집단이 영예를 얻고, 반대로 개인이 잘못하는 경우 집단 전체가 욕을 먹게 됩니다.
한 개인에 대해서 적대행위를 하는 것은 그가 속한 집단을 향해서 적대 행위를 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각 개인은 그가 속한 집단을 대표하므로, 집단은 어떤 방식으로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집단에 속한 개인을 보호합니다. 즉, 한 사람에 대해 던져진 비평이 그가 속한 집안 전체나 공동체 모두에 대한 비판이 되어 버릴 수 있는 것 입니다.

하지만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서 개인의 생각과 의지는 묵살되며, 오로지 집단의 뜻에 따라야 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성취와 이득이나 업적은 집단차원에서 공유하여 나누는 것이 관례입니다.

때때로 방글라데시인들은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일이 아니면 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기보다는 그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도움을 요청할 것을 제안합니다.
방글라데시의 마을이나 도시에는 각 각 그 나름대로 지역 정신이 존재하며, 비록 서로 다른 종교를 가졌다 하더라도, 같은 마을에 살면 그 마을의 공동복지를 위해 한데 어우러져 뭉치게 됩니다. 물론 종교단체들간의 소요와 분쟁이 일어나는 때는 예외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종교가 어떤 기준보다도 앞서게 됩니다.

방글라데시의 사고방식 - 완곡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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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곡한 표현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자기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외에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돌려서 말하는 편이며, 화가 났을 경우나 싸울 경우에만 직접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런식의 대화법은 친척이 대부분인 시골에서 보다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도시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이전에 우선 신변잡기 식의 화제들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전형적인 동양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문제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거나 자신들의 가진 관점을 명백히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눈치를 챌때까지 말을 빙빙 돌려 암시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방글라데시 인들이 외국인들과 대화함에 있어서 이런식의 암시적으로 돌려말하는 대화문화로 인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드러운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우회적인 접근방식을 사용해서 수치감, 분노, 오해와 같이 인간관계상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해야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꾸짖거나 고쳐주고자 한다면 매우 개별적이고도 기교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말하는 완곡어법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첫째가는 화술입니다.
상대를 비판하기에 앞서 상대방 가족의 안부나 건강 등에 대해서 이야기 등으로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방법 입니다. 상대방의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될 경우, 자칫 불편해질수 있는 상황들을 될 수 있으면 편안하고 부드럽게 이끌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전과는 변함없을 확신시켜주기 위함입니다. 이런식의 완곡어법의 사용과 함께 우회적인 접근방식은 방글라데시 문화에 가장 적합한 대화방법입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는, 중개자 혹은 중매자를 동원하는 것 입니다.
싸우는 두사람 사이에서 더 이상의 심한 상처나 수치를 피하고 서로가 내뱉는 가시돋힌 불유쾌한 말 들로 인해 감정이 상하는 것을 막고, 보다 효과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중개자가 필요합니다.
보통, 마을의 원로들이 중개자로 나서게 됩니다.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법정으로 까지 가게 되는 문제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양측 모두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한 원로들의 결정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중개자로 선택되는 사람은 보통 양쪽 모두에게서 존경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분쟁 해결시 그의 말은 양측 모두가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선교사들도 올바른 말로 유익한 충고를 해주는 사람으로 인정되어 중개자로 선택될 수 있습니다. 중개자로 인정되어진 선교사의 태도와 접근 방법이 적절하다면, 비록 선교사가 직접적으로 그들을 꾸짖거나 의견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방글라데시인들은 선교사에게 큰 거부감을 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꾸짖을 경우 공개적인 꾸짖음이 아닌 사적인 대화로 풀어나갸아합니다. 한쪽의 잘못을 꾸짖기 이전에, 그 문제와 양쪽 사람 모두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합니다. 쌍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하면,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 하게 위해서 양쪽을 모두 불러서 토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이 친밀한 교제를 통해 신뢰를 얻어낸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이 마음 속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믿고 존경하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의 진정한 생각을 알기위해서는 그 사람 (물론, 본인과도 친밀한 사람)을 중개자로 세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방글라데시 현지인과의 원만한 대화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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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과의 원만한 대화법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외국인에 대해서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듯 합니다.
서 파키스탄과 독립전쟁시 그들이 자기들의 모든것, 심지어는 유적의 동판까지도 뜯어간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와 같이 외국인들은 결국에는 자기들로부터 무엇이든지 가져갈 사람들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통상, 영어가 사용되지만 호감을 주기 위해서는 현지어로 인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지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친근감을 불러 일을 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방글라데시 인들로부터 자기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경계심을 줄 우려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대화를 할 경우,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좋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상세한 자기 노출 및 과시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글라데시에 대한 부정적인 대화는 삼가하고, 그저 최근들어 섬유산업 중심으로 경제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때문에 감명받았다는 식으로 부드럽게 대화를 유도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자기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 외에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돌려서 말하는 편이며, 화가 났을 경우나 싸울 경우에만 직접적으로, 직선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런식의 대화법은 친척이 대부분인 시골에서 보다 낯선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도시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이전에 우선 신변잡기 식의 화제들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전형적인 동양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문제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거나 자신들의 가진 관점을 명백히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눈치를 챌때까지 말을 빙빙 돌려 암시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방글라데시 인들이 외국인들과 대화함에 있어서 이런식의 암시적으로 돌려말하는 대화문화로 인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드러운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우회적인 접근방식을 사용해서 수치감, 분노, 오해와 같이 인간관계상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해야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꾸짖거나 고쳐주고자 한다면 매우 개별적이고도 기교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말하는 완곡어법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첫째가는 화술입니다. 상대를 비판하기에 앞서 상대방 가족의 안부나 건강 등에 대해서 이야기 등으로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방법 입니다. 상대방의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될 경우, 자칫 불편해질수 있는 상황들을 될 수 있으면 편안하고 부드럽게 이끌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이전과는 변함없을 확신시켜주기 위함입니다. 이런식의 완곡어법의 사용과 함께 우회적인 접근방식은 방글라데시 문화에 가장 적합한 대화방법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신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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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나 오래동안 지내온 선교사들에게 방글라데시인들의 신뢰성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신뢰성이 없다는 쪽으로 이야기합니다. 그에 따른 인간관계의 위험성도 함께 이야기를 합니다.

구두약속은 말할 것 도 없고, 계약서 상으로 약속된 사항도 자기에게 불리하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수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신용장 통일 규칙에 따라 개설된 신용장 조차도 준수하지 않아 방글라데시 측 은행의 신용도는 매우 낮은 실정입니다. 따라서 절대로 현금거래는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들이 발행한 수표 (개인수표)라 할지라도 믿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한국처럼 수표발행후 은행잔고가 없다고 할 지라도 부도처리가 되지 않아서,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인들이 유의할 사항으로 직접 만나서 구두로 약속을 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서류상으로 문서화하기 전에는 구두나누었던 약속사항들이, 이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영국지배의 영향을 받아 사소한 것까지도 문서화하기를 좋아하며, 관청의 서류에 의한 행정처리의 지연이 너무나 심해서 피해를 겪게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가령, 계약이 체결되고 신용장이 개설되어 물건이 선적까지 되었다 할지라도 시장상황이 나빠져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온갖 이유로 클레임을 제기하거나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방글라데시의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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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인들은 발끼리 부딪히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따라 남의 발을 밟았거나, 부딪혔을때에는 반드시 사과를 해야합니다
.
여성들은 허리 위 부분의 노출은 할 수 있으나, 허리 부터 발 끝까지는 철저히 가려야 합니다.
특히, 여성이 반바지를 입는 경우는 없습니다. 중동국가 처럼 차도르로 얼굴 전체를 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서 유행처럼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번지는 추세입니다.

처음 만나는 경우, 방글라데시 말로 "앗살라무 알라이꿈!" (신의 가호가 있으시길!) 이라는 말을 하고, 헤어질때는 "코다 하펫"이나, 감사하다는 뜻인 "돈 노밧" 이라는 인사를 합니다. 명절 때는 만나는 사람마다 가슴과 가슴을 몇 번 대는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여성의 외부의 어떤 것으로 부터도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할때도 악수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여자를 빤히 바라보는 것도 실례가 됩니다.

대부분이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현지인과 식사시 가급적 왼손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왼손으로 물컵을 잡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가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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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생활

한국과 같이 가정 안에서 부모의 권위는 강하며,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하며, 부모를 공경해야하며 경제적으로 독립되기전까지는 부모가 자녀의 모든것을 책임지는 식의 동양 전통사회 관습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남자는 18세 여자는 16세 이상이 되면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회교국가의 특성상 보수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출신성분, 사회적 위치, 재산상태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합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본인의 취향보다는 부모나 친인척의 의견이 많이 적용됩니다. 결혼한 부부에 있어서 남자가 여자보다 3세 내지 5세 많은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 중 교육을 받은 사람의 경우, 대부분 평균 26세 이상이 되어야 결혼을 합니다.

이혼은 배우자의 부정, 성격차이 등으로 발생하는데, 결혼시 제출한 서약을 위배하는 경우도 결혼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즉,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며, 결혼시 준비할 물건들을 빠짐없이 준비할 것이라는 등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이혼 사유가 발생하면 일방이 상대방 및 정부에 딸락 (Talak - 당신과 이혼하겠다)을 서면으로 제출하고, 90일이 지나면 이혼이 성립됩니다. 이 90일동안 부부는 화해할 수 도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이혼률은 약 12%에 이릅니다.

방글라데시의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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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질

방글라데시 인들은 비교적 온순한 편으로 남들과 잘 다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당히 감정적인 사람들로서 매사에 빨리 좋아하고 빨리 화를 내는 편입니다.

방글라데시 인들은 오랜 역사기간동안 외세의 지배와 수탈을 당해왔기 때문에, 외국인에 의한 피해의식이 형성되어 있는 듯 합니다. 외국인들은 자기들의 것을 빼앗아 가거나 빼앗아가버릴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듯 합니다.

대다수의 외국인들이 방글라데시인들의 신뢰도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그들의 신뢰성은 높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라면, 상대방이 반해 버릴 정도로 대하다가도, 조금이라도 본인에게 손해가 될듯한 일이 생기게 된다면 돌변하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몇번 만나본 것만을 가지고, 방글라데시 사람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무조건 믿었다가는 낭패를 당하거나 나중에 크게 실망하는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외세의 지배 및 수탈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여느 다른 민족과 다를 바 없는 현상입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잘못했다, 또는 "죄송하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원래 "미안하다"라는 개념의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자기보다 강한자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 가혹한 처벌이 내려져 자기 보호 본능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방글라데시의 가진자는 못가진자를 매우 무시하는 경향도 있는데, 이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의 영향을 받은듯 합니다.
일부 상류층이 현지인 가정부나 종업원을 가혹하게 대하는 모습을 지켜본 외국인들은 그 모습에 굉장히 놀라는 반면, 방글라데시 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후덥지근한 기후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면이 다소 부족한것 같습니다.
지시하는 일은 아무런 불만없이 수행하는 충실한 면은 있지만, 능동적으로 자기일을 찾아서 하는 경우는 드믑니다. 이런 상황은 낮은 교육수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며, 오랜 식민지 시절동안 늘 고용만 되어왔을분 스스로 사업을 하는 등 스스로 자기일을 꾸려나가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학수준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에서, 명석한 두뇌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려는 진취적인 젊은이들도 간혹가다 눈에 띄이곤합니다.

방글라데시의 종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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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지 문화 관습

1-1 종교생활

최근 인도에서 희두교도들이 라요드 회교사원을 공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을때 방글라데시 내에서도 회교도가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흥분한 회교도들이 힌두교도를 습격한 경우가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두 종교 사이에서 분쟁은 거의 없는 편 입니다. 방글라데시는, 회교도가 전체 인구의 약 87%를 차지하는 회교국가 이기는 하나, 코란에 의한 회교율법이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무슬림이라기 보다는 뱅갈리(Bangali)라는 "민족정체성"이 훨씬 강합니다.
지역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중동지역의 정통 회교국에 비하여 다소 문화적으로 완화된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즉, 정통 회교국에 비해서 여성들의 봉제공장 취업등 사회활동이 보편화 되어 있고, 음주도 할 수 있습니다.

회교도들은 하루에 5번씩 기도생활을 하고 있으며, 휴일인 금요일에는 사원(모스크)에서 기도 ( 줌마, 나마즈)를 합니다. 1 년에 두차례 이드 (Ead) 축제 기간은 정부에서 공식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가 전체적으로 명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가족과 친인척 끼리 한자리에 모여, 전통과 율법에 따른 각종 의식을 행합니다. 이 때는 귀성객들로 버스나 기차 터미날이 매우 붐비고 모든 관공서 및 상점들도 문을 닫아버립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설날이나 추석 명절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겠죠.

이드 (Ead)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금식기간(라마단)이 끝나는 다음날 아침부터 3일간 시작되는 Eid-UI-Fitr와 이드인 Eid-UI-Azha로 나눌수 있습니다.  "이드인"에서는 소나 염소등을 잡아 신에게 제사지내고 1/3은 거지나 이웃에게, 1/3은 친인척에게, 나머지 1/3은 자기가 먹는 행사를 가집니다.
금식 기도 기간인 라마단은 1개월간 계속되는데, 이 기간중에는 해뜨기 전부터 해질때까지는 아무것도 먹지않고 기도를 드리며, 해가 지고나면 먹고 마시며 늦게까지 즐깁니다. 따라서 라마단 기간중에는 근무시간이 단축되며, 비지니스 활동도 휴식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동국가에서 마호멧 탄생일을 최대의 명절로 치는 반면, 방글라데시에서는 위와 같은 이드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회교도는 남여를 가리지 않고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ㆍ알라 등 회교에서 정하는 대상과 율법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 (Iman)
ㆍ매일 5차례의 기도를 해야하는 것 (Prayer)
ㆍ자기소유의 최소 2.5%를 거지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 (Jakat)
ㆍ라마단 기간중에는 금식을 해야 하는 것 (Fasting)
ㆍ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생 동안 한 번 이상 회교 성지인 메카를 방문해야 (Haji) 한다는 것



모든 능력자 (신체적 정신적 금전적)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하고, 힌두교인은 죽은자를 장작으로 태우는 반면, 회교도들은 죽은 자는 반드시 매장을 해야한다는 규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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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 교 :::

1. 대외정책 기조

방글라데시의 대외정책은 비동맹.중립외교노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자주독립 및 주권의 확보.유지, 국내정치.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우호협력관계 증진, 평화.자주.진보를 위한 국제협력증진 등을 외교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헌법 제25조는 주권평등,내정불간섭,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유엔헌장 및 국제법 준수(민족자결주의,반식민,반제국,반인종 주의),회교적 결속에 기초한 회교국가간 형제관계의 유지 및 강화를 외교원칙으로 천명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외교관계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독립주권 수호-안보 외교

ㅇ 인도견제를 위해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추구
ㅇ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출범을 주도, 지역결속강화 도모

2) 빈곤탈피, 국제협력 추진

ㅇ 미국, 일본, 카나다 및 서구제국과의 우호관계심화를 통한 경제원조 획득 노력
ㅇ 홍수 방재를 위한 외교적 노력 경주
ㅇ 영연방내 협조 유지

3) 회교권 결속기여 노력

ㅇ OIC 를 중심으로 한 회교권 국가와 결속강화(특히 사우디와의 관계 중시)

4) 비동맹외교를 통한 국제적지위 향상

ㅇ 비동맹회의 및 국제기구에서의 적극적 활동으로 경제적 후진성을 외교적으로 극복 노력


2. 주변국가과의 관계

가.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outh Asian Association for Regional Cooperation) 80.5월 고 Ziaur Rahman 대통령이 지역협력에 관한 협의를 통한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 85.12월 제1차 정상 회담을 방글라데시에서 개최하는 등 동기구의 창설을 주도하였다.
SAARC는 지역 국가간 비정치분야 협력 도모를 목표로 인도, 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 네팔,부탄, 몰디브의 7개국가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회원국간 상이한 입장과 인도의 지배적인 영향력등을 감안할 때 EU 와 같은 지역통합기구로의 발전가능성은 적으나 지역경제협력 기구로의 발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1998년 7월 스리랑카에서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99년 네팔에서 개최 예정이었으나, 인-파 핵실험 및 카쉬미르 분쟁,네팔국왕 살해사건 등으로 역내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차기 SAARC 정상 회담이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2001.1월에 개최하였다.

나. 대인도 관계

인도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시 최대지원국으로서 정치.
경제적으로 방글라데시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 양국은 1982년 정상회담(Ershad-Indira)을 통하여 합동경제위원회(JEC) 설치에 합의 하여 동위원회를 수시로 개최하여 오고 있다.
1996년12월에는 방글라데시.인도간 갠지스강 용수 배분 협정을 체결하였다.

다. 대파키스탄 관계

1974년4월 양국간 외교관계를 설립하였다. 독립시 전쟁을 겪었으나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1977년12월 Ziaur Rahman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과 1989년7월 부토 파키스탄 수상의 방글라데시 공식방문으로 양국관계가 완전 정상화되었으며, 이후 양국간 교류가 빈번해 지고 있다.

3. 주요국가와의 관계

가. 대중국 관계

1975년10월 양국간 국교가 수립되었으며, 방글라데시는 대중국 우호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무상원조 및 차관공여 등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크다. 빈번한 고위인사교류, 군사사절단 교환방문, 경제협력 및 문화 교류 증대 등을 통해 양국간 유대관계 긴밀화를 도모 하고 있다.

나. 대미국 관계

미국은 일본에 이어 방글라데시의 제2의 원조공여국이며, 방글라데시의 최대의 교역대상국이다. 미국은 1991년4월 태풍피해시 미해병대를 파견,긴급구호활동을 펴는 등 지원활동을 펴 오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비동맹 중립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나 경제원조 획득, 수출시장 확보등 경제관계를 고려,미국과 깊은 유대관계 유지에 노력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국제무력분쟁에 있어 평화유지군 파견등으로 미국의 해결 노력을 지원해 오고 있다.

다. 대러시아 관계

독립후 Mujibur Rahman 대통령 집권시 친소 경향을 띠고 있었으나 동 대통령 피살후에는 관계가 다소 소원해 진 바 있다. 구소련으로부터 다액의 원조의 무상경제협력을 받았으나 공산체제 붕괴후 러시아측으로 부터의 원조는 미미한 편이다.

라. 대일본 관계

1972년 6월 양국간 국교가 수립되고 동년 9월 상호간 대사를 교환 하였다.
수교이후 일본의 원조 및 차관제공 증대로 각료 및 사절단의 교환 등 교류가 활발하다. 일본은 방글라데시 최대원조공여국, 최대투자국이자 방글라데시의 교역상대국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마. 대영국 관계

영국은 구식민종주국으로서 1972년 3월 국교수립이후 활발한 인적교류와 원조를 지속하는 등 양국관계는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면에서 영국이 방글라데시를 지원하는 특수한 관계이다. 영국은 매년 상당액의 유.무상원조를 제공하며 교역상 중요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영연방국의 일원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

4. 비동맹외교

비동맹을 외교의 기조로 삼고 있는 비동맹국의 일원으로서 비동맹 원칙의 준수를 강조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평화공존, 외세배격, 타국내정 문제 불간섭을 주장하면서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빈국을 대변하고 있다.

5. 대아랍 외교

회교국의 일원으로서 회교국가간의 협력과 발전이 주요외교시책의 하나이다.
중동지역에 대한 방글라데시의 노동력 수출은 국가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원조국의 하나인 사우디와도 74.11월 국교수립 이후 양국수뇌의 빈번한 상호교환방문 등을 통해 경제원조증대를 도모하고 있다.

6. Khaleda Zia 정부(2001. 10월 출범)의 대외관계

가. 기본적으로 Hasina 전 정부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나, 허약해진 국내경제 재건을 위해 '경제외교'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표방하였다.
나. 다만 2001. 10월 총선에 승리한 BNP가 전통적으로 친파키스탄 성향(AL 은 친인도 성향)이긴 하나, Khaleda Zia 신임수상이 인도와 선린 우호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발언하여, 인도와의 관계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대 한반도 관계 :::

1. 우리나라와의 기본 관계

1972. 5.12. 한국, 방글라데시정부 승인
1973.12.18. 외교관계 수립
1975. 3. 1. 주방글라데시 상주대사관 개설
1987. 2월 주한 방글라데시 상주대사관 개설
1997. 3.19. 한태규 대사 신임장 제정
2002. 9.24 이규형 대사 신임장 제정

2. 방글라데시의 대한반도 정책

= 비동맹.중립 외교노선에 입각, 남북한 등거리 외교노선을 펴고 있으나,
한.방간 경제관계 심화에 따라 한국과 긴밀한 우호관계 유지
= 남북한 통일문제에 있어 대남.북한 중립, 등거리정책을 반영, 한반도 통일은
외세의 간섭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 견지
= 한국의 각종 국제기구 이사국 진출 등에 있어 지지입장

3. 북한과의 관계

= 북한은 73.12.15. 방글라데시 정부를 승인하고 77.5월 방글라데시 주재
상주공관 개설 (방글라데시는 북경주재 공관이 겸임)
= 양국은 비동맹 회원국으로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왔으나,
80년대초부터 우리나라와 방글라데시간 경제협력 강화로 관계가 소원화 되는 양상
= 양국간 교역규모는 연간 3-4천만불 규모

방글라데시의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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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 군

1971년 독립후 인도와 소련의 재정지원하에 파키스탄과의 독립전쟁시 활약한 해방군을 주축으로 창군하였다.
건군당시의 총병력은 약 1만 8천명(육군 1만 7천명, 해군 5백명, 공군 4백명)이었다.

2) 편 제

지원병제이다.

수상이 군최고통수권을 보유한다.

현재 수상이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다.

국방장관 예하에 육, 해, 공군 3군제로 편성되어 있다.

총병력은 11만명 (육군 9만5천, 해군 9천명, 공군 6천명)이다.

이밖에 Bangladesh Rifles(BDR, 3만명, 국경 경비) 및 ANSAR ( 2만명)의 비정규군이 있다.

방글라데시 군대는 일반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는 엘리트 집단이다.

방글라데시 군은 UN 평화유지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재난구호활동, 사회치안 유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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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치 :::

1-1 국가형태 : 내각책임제 ('91. 9. 15)

1-2 헌법 기본 정신 : 민족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회교 지향

방글라데시의 헌법은 시민의 기본권과 법 앞에서의 만민의 평등, 남녀의 평등, 강제노동의 금지, 집회와 결사의 자유. 종교와 사상과 양심표현의 자유와 재산권 보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1988년 5월에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슬람 정부임을 선언했고, 이슬람 교도들의 개종은 인정하지 않으며, 외국인 (선교사)의 이슬람 교도의 타종교(기독교)로의 개종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인정하지 않는다.

1-3 사법제도

방글라데시의 최고 재판소는 대법원 (The Supreme Court)으로서 다카에 소재하고 있고, 항소심 및 상고심으로 나누어지며, 치타공 및 실렛등 6대 도시에는 고등법원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폐지되고 다카지역에만 1개의 고등법원이 있다. 또한 각 지방 행정중심 조시에는 민사 및 형사 소승을 취급하는 지방법원이 있어며, 특별 법원으로서 노동법원과 가정 법원이 있다. 최고 재판소장인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외 판사는 대법원장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1-4 입법제도

1982. 3. 24 - 엘샤드 (ERSHAD)중장이 쿠테타와 더불어 국회를 해산했다. 1986. 5. 7 - 민정 이양을 위한 국회의원선거에서 집권당 JATIYA PARTY가 압승하였으며, 무소속 약간의 의원들을 JATIYA PARTY로 흡수 전체의원의 2/3을 확보함. 1991. 2. 27 - 총선으로 BNP 140석, AWAMI LEAGUE 84석, JATIYA PARTY 33석, JAMMATE ISLAM BANGLADESH 18석 등 차지. BNP가 기타 군소 야당과 제휴, 총 의석 중 과반수를 조금 상회하는 의석을 확보했다. 1991. 6. - 보궐 선거로 최종 330석 중 BMP 170석, AWAMI LEAGUE 89석, JATIYA PARTY 35석, JAMMATE ISLAM BANGLADESH 20 등 차지, BNP가 JAMMATE ISLAM BANGLADESH 와 연합내각을 구성했다.

1-5 주요정당

1)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angladesh Nationalist Party: B.N.P)

1978년 Ziaur Rahman 당시 대통령이 창당하였다. 현재의 당수는 Begum Khaleda Zia 수상으로서 동 여사는 Ziaur Rahman 대통령의 미망인이다. 군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보수, 민족주의 성향을 띠고 있으며, 1991.2월 총선서 승리, 집권하였다가 1996.6월 총선거에서 패배하여, 제1야당이 되었으며 다시 2001.10.1 총선에서 압승하여 재집권 하였다.

2) 방글라데시 아와미연맹(Bangladesh Awami League: A.L.)

1954년에 창당되었다. 현재 당수는 Sheikh Hasina 이다. Hasina 당수 는 초대 수상 및 대통령 Sheikh Mujibur Rahman의 장녀이다. 이 정당은 원래 서민계층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표방하였으나, 1996년 선거시 주요 금융.공공시설 국유화 반대등 자유시장 경제체제 지향을 천 명하였다.

방글라데시 정당중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친인도 성향의 정당이다. 964년 M. Rahman(초대 대통령)의 영도하에 독립운동 주도하였으며, 1973.3월 제1차 총선승리(315석중 306석)로 1975.1월까지 집권하였고, 1991. 2월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되었다가 1996.6월 총선에서 승리, 집권하 였으나, 2001. 10.1 총선에서 참패하여 다시 야당이 되었다.

3) 국민당(Jatiya Party)

1983년 H.M. Ershad 당시 대통령이 창당하였으며, 동인이 당수직을 맡고 있다. Ershad 정권이 끝난후 1991.2월 및 1996.6월 총선에서 제2야당으로 남아 있다.
96.6월 취임한 AL 정부에 각료 1명(교통부장관) 입각하였다. 그러나 99년 봄 Jatiya Party는 Ershad계와 Manju계, Najiur계로 분파되어 2001.10.1. 총선에 참여하였다.

4) 기타 정당

이슬람당(Jammat-e-Islami), 이슬람 전국연합전선(Islami Jatiya Oikyo Front), 공산당, 노동자농민당 외에 수많은 군소정당이 있으나, 2001.10 월 총선으로 의석을 가지고 있는 정당은 4개 정당밖에 없는 상태이다.

1-6 선거제도

대통령은 국회의원에 의한 간선제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다.
35세 이하거나 국회의원으로 피선거권이 없는 사람이거나 탄핵에 의해 대통령직을 사임한 사람은 대통령 피 선거권이 없다. 방글라데시 의회는 총 330개 의석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300석은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나머지 30석은 여성을 위해 남겨 놓은 후 300명의 직접 선출된 의원들이 투표로 선출하며 임기는 5년이다. 집권당 당수가 수상이 되며 임기는 5년이다.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선거권을 가진다.


::: 경 제 :::

1. 주요 경제지표

ㅇ 국내경제

- 국내총생산(GDP) : US$ 460억 (회계연도 2001)
- 실질경제성장률 : 6.04% (회계연도 2001) ->90 년대 평균성장률 4-5%에 비해 높은 수준
- 1인당 국민소득 (GDP) : 369불 (회계연도 2001)
- 물가상슬률 : 1.8%(2001)
- 국내저축율(GDP대비) : 18.8% 수준 (2001)
- 투자율(GDP대비) : 23.6% 수준 (2001)
- 국내실업률 : 18.5 %(2001)

ㅇ 대외경제

- 총수출 : US$ 65억 (회계 연도 2001)
- 총수입 : US$ 86억 (2001)
- 경상수지 : US$ 21억 적자 (2001)
- 외환보유고 : US$ 11억불 (2001년말)
- 해외근로자의 국내 외환송금 : 약 19.5억불/년
- 환율 : $1 = TK 57.5로서 지속적 평가절하 추세
- 대외부채 : 비교적 부채율이 낮은 최빈개도국
- 부채/GDP : 비율은 37% 정도이며, 그 중 90%정도가 양자.다자 공적원조에 의한 장기저리 대부임.

* 참고자료: 방글라데시 총계청, 재무부, 수출진흥청, 중앙은행 및 World Bank

2. 경제개황

가. 독립이전의 경제 상황

ο 영국으로부터 독립(1948)이전 영국에 대한 공업용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원 겸 영국상품의 시장으로서 전형적인 식민지적 경제구조로 출발하였다. 19세기부터 홍차와 황마(쥬트)의 플랜테이션 경작이 확대됨으로써 근대공업이 시작하였으나, 서파키스탄의 차별정책으로 세계최빈곤지역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이러한 차별정책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독립 하게된 주요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나. 경제환경

ο 전형적인 저개발농업국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계 1위의 인구 조밀국으로서 전체인구의 약 6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농업부문이 국내총생산중 35%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부문이 낙후하고 부존자원이 빈약하다.
ο 높은 인구밀도(세계 1위), 여전히 높은 인구증가율(1.78%), 높은 문맹율(67.6%), 낮은 국민자본 축적 및 기술수준의 낙후, 합리적 경제정책을 추진할 정치사회적 기반 취약, 농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의 불안정(기후조건에 좌우), 부존자원 빈약 등이 경제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ο 잦은 홍수로 인한 농업생산 부진과 공업생산의 완만한 증가로 경제성장이 저해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비농업 원료, 기계, 장비 등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천연가스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도 에너지 수입이 과중한 실정이다. 또한 경제발전의 투자재원을 주로 외자에 의존하고 있으나 최근 무상원조의 감소로 상환 부담이 높아지고 있으며, 잦은 정치적 파업은 수출산업등 제조업 분야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다. 경제구조 및 시장특성

ο 구매력을 보유한 인구비율이 낮다. 또한 복잡한 법이 개인의 제조업등 투자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로 해외원조(연간 약 $ 20억 규모)와 해외취업노동자들의 송금에 의해 만성적인 무역수지적자를 일부 보완하고 재정의 약 60%를 동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개발사업은 국외자본을 주요재원으로 하여 추진되며, 원조국의 영향력이 크다.
ο 시장규모는 매년 높은 인구증가로 확대되고 있지만 낮은 국민소득으로 유효수요 및 구매력은 미미하다. 다카, 치타공, 쿨라, 라샤히 등이 주요상업도시이나 다카 및 치타공에 대부분의 상업활동이 집중되어 있다. 국가기업체를 제외하고는 대규모 도소매상이 없으며 대부분 가족경영 형태로 소규모 영업을 하고 있다. 회교국가로서 종교의식이 소비패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내구소비재 시장형성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형편이다.

3. 제5차 경제개발 계획(1997.7.1-2002.6.30)

ο 방글라데시 정부는 동 계획의 개발목표를 빈곤타파 (Poverty Alleviation), 식량 자급, 고용 증진, 50% 이상의 국민들을 절대 빈곤층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인구증가율 축소, 인적자원 개발과 지방 인프라 개발에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지방 개발기관 육성 등을 내걸고 1998.3.4 방글라데시 경제 기획위원회(NEC : The National Economic Council)에서 동 5개년 계획에 Tk19,525.2억 (약424억불)의 개발자금을 집행하고 연평균 7%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ο 부문별 투자계획을 보면, 56%는 민간부문에, 44%는 공공부문에 투자할 예정으로서 필요 자금중 78%는 국내자금을 활용(해외 근로자 송금 포함) 하고, 나머지 22%는 외국원조와 외국인 투자유치로 충당할 계획이다. 동 기간중 농업부문에 5%, 공업부문에 14%, 개스 및 에너지 부문에 23%, 교육분야에 6.5%, 보건분야에 6.3%, 상업분야에 7.9%, 교통분야에 7.5%의 투자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4. 주요 산업별 개황

가. 산업정책

ο 방글라데시 정부는 식량자급을 목표로 농업부문 및 농업관련 공업부문에 중점투자하고 있고, 수출산업(의류, 완구 등) 적극육성 및 발굴, 국민의 기본적 수요충족을 위한 필요소비재 생산증대, 산업입지의 분산을 통한 지역간 균형발전 도모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 산업구조

<농 업>
ο 국내총생산의 35%(94/95 회계년도), 노동력의 2/3를 차지하는 경제의 근간이다.
ο 농업분야는 고용창출, 빈곤완화, 인적자원 개발, 식량안보 문제에 중대변수로 작용한다. 현정부도 농업부문 육성에 정책최우선 순위를 부여,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한 집약적 다작농업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식량자급자족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농업 인프라 시설이 미비되어 있고 과잉 인구 및 홍수로 인한 잦은 생산 손실로 매년 곡물의 상 당량을 수입하고 있다.
ο 황마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황마산업에는 전고용인력의 10%가 종사하고 있고 플렌테이션 경작을 통해 세계 황마생산의 30%를 차지 하고, 황마제품 및 원료수출이 방글라데시 전체수출액의 약 35%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ο 공업화 부진으로 국내총생산의 11%에 불과하다. 독립(72년)이후 사회주의이념실현의 기치아래 공업시설 대부분을 국유화하였다. ZiaurRahman 정권이후 민간부문 우대책과 함께 민영화를 추진하여 왔으나, 진척이 부진하다.

ο 농산물 가공업(황마, 설탕, 담배, 섬유 등)이 주종이었으나 최신 의류산업 등 비전통부문의 성장가속으로 공업기반 확대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최근 수출주도에 의한 제조업성장정책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광업 및 에너지>
ο 천연가스, 석회석, 고령토(China Clay)를 제외한 나머지 광물자원은 극히 빈약하다. 국내생산 에너지의 95%를 차지하는 천연가스는 약 20조입방피트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생산 에너지원은 천연가스 및 석탄이며, 석유류 수입이 전체에너지 수입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벵갈만의 석유,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외국석유자본 유치에 노력하고 있다.

5. 무역정책

가. 기본정책

ο 방글라데시 정부는 전통상품의 수출기반 공고화 및 비전통상품의 수출증대, 외환사정의 경색으로 인한 구상무역 확대 추구, 수출품의 고부가 가치화, 현지생산가능 품목의 수입억제 및 원부자재의 수입 원활화, 사치성물품 등 불요불급의 수입억제 등을 추구하고 있다.

나. 무역구조

ο 주요수출상품은 황마(Jute)제품, 차(Tea), 피혁, 냉동새우 등 전통수출 상품으로 수출신장에 한계가 있다. 수입은 섬유제품, 원부자재, 시설재 및 소비재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무역수지의 개선에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ο 섬유제품(봉제의류)의 경우, 정부의 강력한 육성책에 힘입어 급속히 발전, 총수출액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다. 수입관리

ο 수입관련 특별법규는 없다. 다만 재무부가 마련한 년간외환운용계획서 및 지출용도별 외환재원할당내역서를 근거로 상무부가 2년마다 수입정책(Import Policy Order)을 발표, 시행해 나가고 있다.
ο 현재 고율관세를 유지(원자재 15-22.5%, 중간재 22.5-30%, 완제품 30-45%, 사치품 100% 이상) 하고 있다.
ο 안보, 국민건강, 사회, 종교적 이유에서 93개 품목에 대한 수입제한 또는 금지 조치를 시행중이다. 수입제한 품목의 수입시는 수입면허(import licenses)가 필요하다. 주요 수입금지품목에는 방글라데시 정부발행 지도와 내용이 다른 지도, 지구본, 공포만화, 외설출판물, 회교윤리손상 출판물.영화, 산돼지, 돼지기름, 어망, 나일론 밧줄, 이스라엘 원산 또는 이스라엘 국적 선반 운송물품 등이 있다.

라. 수출관리

ο 상무부가 2년마다 한번씩 수출정책을 수립,시행하고 있는데, 빈약한 수출산업기조개선을 위한 수출증대와 이를 통한 무역수지적자폭 축소가 주요 목표로서 비전통수출상품의 수출증대가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ο 수출진흥기금(EPF: Export Promotion Fund) 신설, 수출절차 간소화, 세제.금융상의 혜택등 부여로 수출 지원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ο 수출금지 품목으로는 철 및 비철금속, 고철,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나프타 및 난방용 제외), 황마 종자, 양파, 우유 및 우유제품, 쇠고기, 양고기, 코코낫, 계란 및 가금류, 새우(Prawns and Shrimp, 단, 냉동제 외). 개구리, 개구리 다리 등이 있다.

6. 투자환경

가. 외국투자 적극 유치 정책

ο 공업화를 위한 경제성장 촉진, 고용증대, 선진기술 습득, 수출증대 등을 위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나. 투자유치기관

1) BEPZA(Bangladesh Export Processing Zones Authority): 수출가공지역
다카근교 사바르 및 치타공에 소재(EPZ) 입주 투자업체 유치
2) BOI(Bureau of Investment): 기타지역 입주 투자업체 유치

다. 투자여건

<장 점>
ㅇ 풍부한 노동력 및 인건비 저렴 ( 주 6일 48시간 근무)
ㅇ 투자금액 제한이 없음(100% 단독투자 허용), 과실송금 허용
ㅇ 면세혜택 (우리나라와는 2중과세방지협정 체결)

<단 점>
ㅇ 불완전한 법규, 정책의 안정성 결여
ㅇ 행정처리의 지연 및 절차의 복잡등 행정상의 비능률 및 부패
ㅇ 잦은 hartal(일종의 정치폭력파업)등 사회적 불안

라. 투자 인센티브(수출가공지역 기준)

ㅇ 면세혜택
- 10년간 법인세 면제
- 차입자본 이자소득세 면제
- 수출가공공단 이외 지역에는 3-5년으로 면세혜택 기간이 다소 차이가 있음.
ㅇ 면세 수출입
- 기계, 장비 및 원자재 면세 수입
- 생산제품의 면세수출
ㅇ 기 타
- 투자원리금 회수 보장
- 송금허용(배당금, 급여, 로열티 등)
- 공단내 입주업체의 노동조합 결성 및 파업금지(2004년 1월부터 노조도입 예정이며, 그 이전 과도기로서 금년부터 단위사업장별로 복지위원회를 구성, 노사간 근로복지문제에 대해 협 의하는 시스템 도입 예정)
- 에너지 및 용수의 안정적 공급

마. 투자유망업종(예시)

ο 의류, 섬유제품, 염색가공, 제지, 신발류, 가죽제품, 인쇄기기, 플라스틱 제품, 절삭.연마공구, 완구 등
ㅇ 낮은 노동생산성
ㅇ 도로, 항만, 전력, 통신 등 사회간접시설 낙후

방글라데시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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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어(문자) .
공용어 - 방글라
인도.아리안어 족에 속하며, 대부분의 국민(전체의 98%가량)이 사용한다.
지역에 따라 방언이 많다.

방글라가 공용어이나, 지식인들이나 비지니스 종사자는 대부분 영어를 상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약 40여개의 부족어들이 있다.

방글라데시의 국기,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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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 기
- 방글라데시의 국기는 1971년 3월 독립전쟁시 인민연맹당 (Awami League)의 당기를 모체로 하여 제정되었다. 적색의 원은 방글라데시(뱅갈의 나라)의 독립, 저항의 정신을 상징하며, 바탕의 녹색은 풍요한 방글라데시의 국토를 상징한다.

2) 국가

- 방글라데시 국가인 아마르 쇼나르 방글라 (Amar Shonar Bangla) [My Golden Bengal]는 19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에 의해 작사되었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My Bengal of gold, I love you
Forever your skies, your air set my heart in tune as if it were a flute.
In Spring, Oh mother mine, the fragrance from your mango-gloves makes me wild with joy --
Ah, what a thrill!
In Automn, Oh mother mine, in the full-blossomed paddy fields,
I have seen spread all over-sweet smiles!
Ah, what a beauty, what shades, what an affection and what a tenderness!
What a quilt have you spread at the feet of banyan trees and along the banks of rivers!
Oh mother mine, words from your lips are like Nectar to my ears!
Ah, what a thrill!
If sadness, Oh mother mine, casts a gloom on your face, my eyes are filled with tears!

방글라데시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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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 방글라데쉬는 계절간의 기후 변화가 우리나라 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6계절이 있다.

그리쇼깔(여름) : 4월 중순 ~ 6월 중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계절. 바나나, 호박, 고구마, 오이, 가지, 수박 등 야채가 풍성한 계절이다.

볼샤깔(우기, 몬순계절) : 6월 중순 ~ 8월 중순 무더위는 여전하지만 소나기가 종종 식혀주고 망고와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이 풍성한 계절

쇼롯깔(가을) : 8월 중순 ~ 10월 중순, 두 번째로 견디기 힘든 계절. 다양한 종류의 야채와 과일이 나는 계절이다.

헤몬또깔(이슬의 계절) : 10월 중순 ~ 12월 중순, 건조하고 시원해진다. 가장 강력한 태풍이 오는 계절. 많은 종류의 야채와 과일을 구할 수 있다.

싯깔(겨울) : 12월 중순 ~ 2월 중순, 가장 지내기 좋은 시기이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고, 컬리플라워, 사과, 오랜지, 구아바 등의 과일을 난다.

보숀또깔(봄) : 2월 중순 ~ 4월 중순, 온화하고 건조한 낮과 다소 쌀쌀한 저녁기후, 그리고 엄청난 양의 먼지들이 특징이다.

방글라데시의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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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11월 ~ 2월), 여름 (3월 ~6월), 우기 (7월 ~10월)로 구분되는 아열대 몬순기후이다.
겨울에는 최저 7.22℃ - 12.77℃ 에서 최고 23.88℃ ~ 31.11 ℃ 의 기온 분포를 보이고 있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여름 최고 기온은 평군 36.66℃ 정도이나 지역에 따라 최고 40℃ 이상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우기인 7월부터 10월에는 연중 강우량의 약 80%의 비가 집중적으로 내려  국토의 대부분이 침수되어 농사에 많은 피해를 준다.

연평균 강우량은 1.429mm ~ 4.338mm 에 달하며, 특히 남쪽 항구도시 치타공 지역과 북쪽 지역 도시인 실렛지방에 많은 비가 내리며, 북서지방은 비교적 비가 적게 내리는 편이다.

일년 내내 높은 습도 (80~90%)에 주의하는게 좋다.

히말라야의 눈이 녹고 비오는 몬순 계절이 겹치면 언례행사인 홍수가 일어난다. 보통 국토의 십분의 일 정도가 피해지역이 되지만, 국토의 삼분의 이가 피해 가능 지역이다. 홍수때 강물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싸이클론(태풍)이 일어나 강물이 벵골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은 막게되면서 더 큰 피해를 생기게 된다. 1988년에 일어난 최악의 홍수 때 국토의 84%가 물에 잠겼고 4천 5백만의 이재민이 났으며, 2300명이 사망하고 180톤의 곡물 피해가 발생했다.
태풍은 벵골만의 해일과 함께 정기적으로 해안을 강타한다. 지난 180년간 일어난 200여개의 태풍으로 오백만 내지 육백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1991년 4월 30일에 일어난 태풍으로만 삼십만이 목숨을 잃었다.

:::  계절 :::

1. 그리소 (여름)

4울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다. 밤 낮 무더우며 종종 낮에는 바람이 불고 무덥고 먼지 투성이가 되며, 저녁에는 북서쪽에서 검은 구름이 물려와 바람과 우박과 천둥번개가 치곤한다. 몬순이 가까와지면 다시 태양이 따갑게 내리 쬔다. 아름다운 크리쉬나추라 나무가 만발하여 붉은 오랜지 색의 꽃이 열기와 습기를 표현해 준다. 타오르는 태양이 대부분의 식물을 메마르게 하고, 푸른 망고가 폭풍으로 떨어져 소스나 쳐트니나 파이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바나나, 호박도 이 시기에 잘 익는다. 이 외에 고구마, 오이, 가지, 감자, 당근, 콩, 수박, 리쭈, 푸른 망고등이 나온다.

2. 보르소 (우기, 몬순 계절)

6월 중순부터 8울 중순까지로 무더운 계절뒤에 다가오는 신선한 계절이다. 24시간 내내 비가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매우 지리한 일이다. 그러나 햇빛이 가끔 얼굴을 내밀면서 내리는 비는 그나마 시운한 기운을 더해준다. 농촌은 푸른 벼들로 가득차게 되고, 하늘은 한폭의 그림같은 광경을 그려낸다. 이 기간에는 곰팡이와 벌레로 인한 문제가 발생되기 쉬우므로, 책과 가재도구의 보관에 신경을 써야한다. 심한 경우에는 더러워진 옷과 테이블보와 침대 커버에 하룻사이에  콤팡이가 필 때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달고 큰 방글라데시 산 맹고와 파인애플을 이 기간 중에 쉽게 구할 수 있고, 또한 열대꽃, 식물이 가장 무성하게 된다.

3. 사우라우트 (가을)

8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인데 두번째로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우기는 지나갔지만 습도와 기온은 여전히 높아서 모든 사람들의 불쾌지수가 매우 높아질 때이다. 그러므로 휴가의 계절로 적당하다. 또한 정원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4. 헤몬또 (이슬의 계절)

10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로 건조하고 시원해진다. 화초가 가장 잘 자라는 시기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나무는 푸르르다.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저녁에는 이슬이 내리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른 아침에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기간동안 밤에 외출할 때에는 두껍지 않은 천으로 몸을 감싸야 한다. 침대에서 잘때도 담요를 덮어야 한다. 가장 강력한 싸이클론 이 바로 이 계절에 불어오기도 한다. 이 계절이 되어야 갖가지 종류의 채소와 과일을 구할 수 있다.

5. 쉬트 (겨울)

12월 중순부터 2월 중순까지로 가장 지내기 좋은 시기이다. 낮 기온은 20~25℃ 정도이고, 밤기온은 10 ~12℃도 까지 떨어진다. 1월 중에 가끔 비가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비가 오지 않은 시기이므로, 소풍가기에 적함한 시기이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실제로 이 시기에 소풍을 즐긴다. 버스를 타고 가서 야외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낮에도 긴 소매의 옷을 입고 천을 몸에 감고 있어야하며, 건물 내부에서 추위를 느낄 수 있다. 콩, 컬리플라워, 토마토, 완두콩, 상치, 오이, 당근, 감자, 양배추, 사과, 오렌지, 구아바 , 사탕 무우등이 나온다.

6. 보숀또 (봄)

2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온화하고 건조한 낮과 다소 쌀쌀한 저녁 기후가 특징이다. 자주 먼지 섞인 바람이 불어 집안을 청소하기가 매우 어렵다. 습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온도가 높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다음은 추운 계절을 위해 담요와 스웨터를 보관해야 할 시기이다.

방글라데시의 민족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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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는 여타 인근국과는 달리 국민의 대부분인 단일민족인 뱅갈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뱅갈족 자체는 오랜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Proto-Australoid (호주 원주민계), 드라비다족, 아리안족, 몽고족 등 여러종족간의 혼혈족이다.

이 밖에 방글라데시 국경지역에는 지역간의 고립에 의해 비교적 고유의 혈통을 보존해 오고 있는 Chakma, Mogh, Mru, Bom, Mizo, Pankhu, Garo 등 약 60개 정도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 소수 부족들은 치타공 Hill Tracks를 중심으로 하여 국정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불교, 힌두교, 기독교 및 무속신앙을 믿으며 매우 온순하다. 고유의 풍습을 지키고 사냥이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소수 부족들과 방글라데시인 (뱅갈족) 사이의 마찰은 없는 편이다.

방글라데시의 지리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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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면적은 144,000 KM2 로 남한의 약1.5배, 한반도 전체의 2/3정도의 크기입니다.
방글라데시는 아시아 대룍의 중심부에서 남동쪽으로 향한 히말라야 산맥이 미얀마와의 접경을 타고 남아함에 따라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인도대륙의 그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북쪽 및 서쪽으로는 인도, 남쪽으로는 뱅갈만, 동쪽으로는 인도 및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북위 20도 34분과 26도 38분, 동경 88도 10분과 92도 41분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국토는 국토의 90%이상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록을 수원으로 하는 브라마트라강 (일명 자무나강), 겐지스강(일명 빠드마강), 메그나강 등 3개강을 중심으로 한 약 230여개에 달하는 수많은 강들이 국토를 가로질러 뱅갈만으로 흘러들어가는 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 충적평야 지대입니다. 따라서 방글라데시 국토의 고도는 1마일당 5인치 정도에 불과하며, 바다로부터 약 300Km이상의 내륙의 고도가 3m에 불과한 곳도 있기 때문에 매년 홍수의 피해가 큽니다.

국토는 행정 및 지역 별 특성에 따라 Dhaka,Chittagong, Rajshahi, Khulna, Barial등 5개의 성 (Division)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밑으로는 21개의 현 (Region, 또는 Greater Disrict), 64개의 Zila (또는 Sub-division), 489개의 군(Thana), 4,451개의 촌(Union) 및 59,990개의 촌락 (Village, 또는 Mauzas)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질학적 특성에 따라서는 고대충적 평야지대, 근대 범람원 지대 및 고원지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충적 평야지대란 신생기와 빙하기에 이루어진 충적평야지대로 주변 지역보다 다소 높아 근세에 와서 퇴적활동이 중단된 안정된 평야지대를 말하며 , 근세 범람원 지대란 근세에 들어와서 큰 강들의 범람에 의해 이루어진 비옥하고 지대가 불안정한 지역을 말합니다.

고원지대란 인도의 Meghalaya 고원지대와 연결된 실렛고원지대 인도의 트리뿌라 (Tripura) 고원지대와 연결된 치타공 및 치타공힐 트랙스 (Chittagong Hill Tract) 등을 말하며 차재배가 성행하고 수력발전소 등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해역 - 영해 : 12해리, 접속수역 : 6해리, 경제수역 : 12해리(1974.3.14) 시차 -

방글라데시와 한국과의 시차는 3시간입니다. (한국보다 3시간 느리고, 그리니치 표준시간보다는 6시간 앞섭니다.)

방글라데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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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가. 고대

선사시대부터 뱅갈지역 (인도의 West Bangal 주 포함)에는 원주민인 드라비다 족이 살고 있었으나, BC 6세기 경 부터는 인도 등지로부터 아리안 족이 침입하여 곳곳에 섞여 정착하기 시작했다. 또한 가까운 티베트, 미얀마 등지로부터는 터어키족, 몽고족등이 이주해와서  종족간의 혼혈이 이루어졌으며, 뱅갈인이 형성되었다. BC 5세기 중엽부터 뱅갈지역 (브라마트라강 서쪽지방)은 마가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불교가 전파되었다. 이어 마우리아 왕조와 쿠샨 왕조로 이어지면서 불교가 이 지역에서 크게 교세를 떨쳐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다. 그러나 AD 4세기 굽타왕조가 인도를 재통일 하면서 부라만 교를 국교로 정하여 불교가 일시 쇠퇴하였으나 AD 8세기경 팔라왕조가 성립되면서 불교는 비로서 전 뱅갈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나. 이슬람 시대

1204년 회교도의 침입으로 팔라왕조가 멸망하고, 터키계 고리왕조가 성립되면서 터키계 회교도들에 의해 지배되어왔다.
1576년 무갈 왕조의 아크바르 대제가 뱅갈지역을 정복하였으며, 영국식민통치와 대체될때까지 무갈왕조의 지배는 계속되었다. 무갈왕조의 아크바르대제는 행정기구를 중앙집권적으로 정비하는 한편, 토지의 사유를 금지하고 왕이 전토지를 소유하면서 궁정 회교귀족에게 하사하였으며, 귀족들은 기존의 카스트제도를 이용하여 토지를 지방호족(힌두교도)에게 세습적으로 관리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궁정 회교귀족을 중심으로 문화가 번성하였고,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수공업과 상공업의 발달은 도시 기술자의 지위 향상을 도모했으며, 비회교도에 대한 인두세가 부과되는등 차별정책이 시작되자, 카스트 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교에게로의 개종이 시작되어 오늘날 회교국의 계기가 되었다.

다. 영국 식민통치 시대

1600년 영국의 인도 통치가 시작된 이래 1757년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함에 따라 영국은 뱅갈지역을 포함한 인도 전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갖게 되었다. 1773년부터 총독에 의한 영국의 직접통치는 회교도들에 의한 등용의 차별(힌두교도 우대) 정책과 경제 수탈 정책으로 뱅갈 지역의 회교도들은 영국인과 힌두교도의 이중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 결과 농촌은 황폐화 되었다. 1815년 이래 영국으로부터 기계와 면제품이 수입됨에 따라 한창 번성하던 면공업도 완전히 파멸하였으며 이를 대체할 수출품 생산을 위해 쥬트와 차 재배가 도입되게 되었다. 19세기 초엽부터 반 힌두교 성격이 강한 회교 부흥 운동이 일기 시작했으며, 이 운동은 20세기에 들어와서 회교 엘리트들의 반 영국운동으로 바뀌어 뱅갈 지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2차대전의 종료와 함께 종교적인 공통성이란 이유로 뱅갈지역은 파키스탄의 1개주인 동파키스탄으로 1947년 8월24일 독립하였다.

라. 동파키스탄 시대

종족, 언어 및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동/서 지역이 한나라로 독립되고, 서파키스탄 정부의 동파키스탄에 대한 경제포탈, 문화종속, 정치적 압제 등의 차별정책이 심해지자 저항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 동파키스탄의 저항운동은 1952년 "뱅갈어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1948년에 파키스탄의 까이디.아좀 대통령이 동파키스탄도 서파키스탄의 언어인 우르두어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58년에 중앙정부가 주정부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직접 통치하에 두어 아유브.칸 장군의 군정에 의한 통치와 1962년 퇴역한 후 선거를 실시하여 형식상의 민정통치를 하였으나 이에 대한 뱅갈인들의 거족적인 데모(1965년에 일어난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 후 66-68년 3년동안 독립운동이 무척 강했었다.)로 결국 1969년 10월 이야히야.칸 장군에게 정권이 이양되었다. 1970년 11월 총선에서 동파키스탄 분리를 주창해 왔던 {아와미}연맹당의 압승으로 중앙정부의 국회개회 무기한 연기에 대항하여 세크.무지바르.라만 당수가 전면파업과 함께 1971년3월26일 아침 치타공방송국을 통해서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동.서지역의 대립은 결국 내전화되고 말았다. 이러한 동파키스탄 독립운동을 중앙정부가 무력으로 강제진압하려 하였으나, 동년 12월3일에 인도의 참전으로 실패하고, 마침내 1971년 12월16일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라는 국호로 독립하였다.

마. 방글라데시 탄생

독립 후 1972년 1월10일 아와미리그의 무지바르.라만 당수가 귀국하여 잠정 헌법을 선포하였다. 라만은 A.S.쪼드리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자기는 수상으로서 국방. 내무. 공보상을 겸하고, 사회주의 경제방식과 비동맹 중립노선을 견지할 것을 선언하였다. 라만은 취임 당시 국민들에게 3개월 이내에 식량의 자급자족을 달성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발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국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팽배해져 갔다. 이에 따라 그는 농산물과 기타 일용상품 분배에 실패해서 엄청난 물가상승과 극심한 인플레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기도 했었다. 1972년 12월 헌법제정에 이어 1973년 3월에 실시된 최초의 총선에서 모지불.라만이 이끄는 아와미리그가 압승하여 라만체제가 더욱 공고화되었다.
그러나 1973년 석유파동과 1974년 가뭄으로 인한 기아사태 등에 의한 경제의 혼란과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겹쳐, 야당에 의해 주도된 반정부 시위활동으로 국내치안이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74년12월말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975년 1월 대통령 중심제로하는 헌법개정을 단행하였다. 1975년 8월 계엄령의 선포로 정당활동의 금지와 일당통치를 기도하던 중 모지불무지바르.라만대통령이 청년장교들에 의해 피살됨을 계기로 쿠테타가 발생하여, 동년 12월 지아.우르.라만장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1977년 4월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1981년 5월30일 암살당하였다. 1982년 3월 당시 육군참모총장 엘샤드(ERSHAD)중장이 무혈쿠테타로 정권을 장악, 계엄령하에 통치를 계속하였으며, 1986년 5월7일 민정이양 첫단계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집권여당인 쟈띠오파티당(JATIYA PARTY)이 압승하였다. 이 엘샤드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개발과 국민생활개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졌다.
몇 번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홍수,인구증가,문맹 등 문제들이 잡혀 나아가기 시작했다. 평화적인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개발프로그램들이 뱅갈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6년 10월 15일 민정이양을 위한 대통령 선거에서 엘샤드가 대통령에 당선, 1986년11월10일계엄령을 철폐하였다.

1987년 11월 11일-26일(17일간) 야당측은 엘샤드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대정부 강경투쟁 'DHAKA SLEGE PROGRAM'을 벌이자 정부는 1987년 11월27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987년 12월 6일 국회를 해산하였다. 1988년 3월3일 정부는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여당인 쟈띠오파티(JATIYA PARTY)가 83%의석(300석중 250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4월 25일 국회개원과 더불어 비상사태를 해제하였으며, 4월 28일 개각을 단행하였다. 1989년 7월 대통령임기 5년으로 1회 연임가능, 부통령은 국민투표로 직접 선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헌법을 개정하였으나, 야당연합 주도의 정권퇴진운동으로 1990년 12월 6일 엘사드 대통령의 하야 후 JATIYA PARTY정권이 붕괴하였다. 1990년 12월 7일 전임 대법원장 샤하붇딘이 아당연합의 추천하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총선에 의한 신의회 구성 및 민선정부에 권력이양을 약속하였다.  

1991년 2월 27일 총선결과 방글라데시국민당(BNP;BANGLADESH NATIONAL PARTY)이 승리하여 기타 군소정당과 연정으로 국민당의 당수인 칼레다.지아(KHALEDA ZIA)여사(지아 우르 라만 전수상의 부인)가 수상에 취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동년 9월 15일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하였다. 1996년 6월 12일 제7대 총선 아와미 리그가 제1당으로 등장, 당수 Sheikh Hasina(모지불 라만 전 수상의 딸) 총리취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www.bangla.co.kr

아마르 쇼나르 방글라.. [cultur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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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미 방글라 간 가이 (나는 방글라로 노래합니다) 』

그들의 나라사랑은 노래로 표현된다.

내가 들어본 몇안되는 방글라데시 노래들..
모든 노래엔 Bangla가 들어간다.

" 아마르 쇼나르 방글라 (나의 황금같은 조국 방글라)
  아미 또마께 발로바시 (나는 너를 사랑한다) "

이것이 방글라데시의 국가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멜로디또한 정말 사랑이 짙게 묻어있다.

『 굽 샷 (정말 맛있다) 』

내가 방글라를 좋아하는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다.

방글라의 음식을 매우 강렬하다.
서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음식 카레가 주를 이루지만..
방글라 특유의 똘까리는 정말 맛있다.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물고기 등으로 만들 수 있다.

방글라 음식은 ㅇㅣ미 다 배운 상태다.
요즘에도 집에서 가끔 해먹지만 맛있게 만들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마르 쇼나르 방글라.. [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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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r Sonar Bangla..
나의 황금같은 조국 방글라데시..

『 내가 왜이렇게 방글라에 열광하게되었는가? 』

아시아 최대의 빈곤국가 방글라데시에는
행복과 情과 사랑이 가득하다..

누군가..
"지금 난 너무 행복해요. 일이 힘들고 늦게 끝나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지만
알라신이 있고 나의 조국이 있고 가족들이 있고 내가 있어서 나는 행복해요."

누구나 알듯이 방글라는 행복지수 1위인 묘한 나라이다.

그들의 문화상을 들여다보자면..
우리나라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언어의 어법순서도 그렇고..
놀고 먹고 즐기는 문화또한;; 그리고 사람들의 정과..
그사람들과 지내다 보면 몸소 피부로 느껴진다.
'이건 정말 비슷하구나...' 하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처음엔 마냥 신기하기만 이곳의 문화자체가..
이제 나의 일상이 되고 나의 문화가 되버렸다.

『 아미 방글라 발로바시 (나는 방글라를 사랑한다) 』

나는 사람들에게 방글라로 가서 살거라고 말한다.
열이면 아홉은 그런 나라 가서 뭐하냐고 고작 꿈이 그거냐고 한다.

모두들 나의 꿈을 마냥 짓밟고 있다.

나에겐 방글라의 꿈이 있다!!!

그 꿈이 뭐냐하며는..
방글라 사람이 되버리는 것이다.

방글라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나는 그저 행복하게 살고싶다.
지금 현대사회는 무언가를 갖게 되면
또 다른 더 큰 무언가가 갖고싶은 욕망이 판을친다.
이런 저런 욕심을 갖게 되서 나조차도 제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방글라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그 자체로 머물러 있음을 매우 감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 점들이 나를 방글라로 더욱 끌어들이고 있다.

출처:아시아의 친구들(http://foa2002.or.kr)
편집(정리):가우리(GBC)